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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 죽음맞은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전말

핫페이지 2020. 11. 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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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박순자 얼굴 공개

 

SBS에서 방영중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에서 매번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이번에도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을 다뤘습니다.

 

2020년 11월 26일 오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시즌1 마지막 회에서는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을 다뤘습니다.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무려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의 실체는 등골이 오싹하고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사람들

여사장 박순자는 1987년 대전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그녀가 운영하던 공예품 회사 '오대양'은 직원들 복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편,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급 보육 시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직원 자녀를 위한 학사를 무료로 지원하는 등 당시 이른바, '꿈의 직장'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순자 사장은 인근 지역 여성들의 '워너비'이자, 대전의 천사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직원 및 아이들과 함께 말입니다.

공장 천장 안 32구의 시신 정체는

행방불명 닷새 만에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회사 공장의 천장이었고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모두 32구의 시신은 두 곳에 나뉘어 겹겹이 쌓여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되어 있고, 목에는 뚜렷한 교살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명백한 타살 흔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누구에게도 저항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요. 부검 결과, 어떤 약물도 검출되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거라고 합니다.

사건 발생 며칠 뒤, 현장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됐습니다.모두 예순일곱 개로 찢긴 하얀 종이쪽지였다고 합니다. 

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복원된 쪽지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절대로 입 닫아라…'로 시작하는 의문의 쪽지는 과연 어떤 진실을 담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전말 결말 정리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알지못하는 이유로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순자는 자신이 신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었고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하게 됩니다..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데리고 이탈하였습니다. 그리고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를 직접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오대양'이었다고 합니다.

오대양 교단은 유치원과 양로원과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이 시설들은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몄고, 고아들을 잘 키우는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속내는 신도들의 자녀를 세뇌하여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세뇌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주 박순자는 1984년에 공예품 제조회사 '오대양'을 만들었고 그후에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며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1986년 4월, 일본의 모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대단한 거액인 7억 원을 투자해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사업은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 손실을 매꾸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고 지시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빛은 갚지는 않고 사채만 끌어다 쓰기 시작하니 당연히 채무자들에게 독촉과 사채이자가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기 시작합니다.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은 열성 신도와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의 식당 천장에 4일간 숨었다고 합니다.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 모 씨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장에서 죽어 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박순자의 남편이 경찰에 오후 4시 무렵에 신고해 집단변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당시 실제 사인은 교살(목졸림)로 판명되었습니다. 경찰은 사망자들이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수사를 종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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